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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유가족 대표 "최초 좌초 들었다"

호랑이277 2012. 4. 25. 03:12

[천안함 제8차 공판] - 작전상황도상 빨간점의 정체는 무엇?

 

어제 공판의 핵심은 해군에서 작성한 ‘작전상황도’였습니다. 작전상황도를 누가 작성했는지 여부 작전상황도 상에 표기된 ‘최초좌초’를 누가 썼으며 어떤 경위로 썼는지 여부 그리고 붉은 점과 그 주변에 표기된 내용과 함선 배치와 관련된 내용이 주요 쟁점입니다.

 

문제의 작전상황도는 사고 다음날인 2010년 3월 27일 오후4:41 아시아경제 윤동주 기자의 ‘포토뉴스’로 처음 공개가 되었습니다.

 

 

비록 사진 한 장 짜리 뉴스이지만 이 보도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그 해석에 있어서도 2010년, 2011년, 2012년 3년에 걸쳐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어 천안함 사건의 진상규명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인 것입니다.

 


1. 작전도상 메모 -‘최초좌초, 고조, 저조, 평균수면’

 

작전상황도에 기록되어 있는 메모(고조, 저조, 평균수면, 최초좌초등)와 관련하여  어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태호 정훈공보실장(소령), 이원보 22전대장(대령)과 박형준 전 유가족 대표에게 물어 본 바 그 메모는 이용기 씨가 직접 작성해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 증언을 통해 이용기 씨가 작전상황도에 그러한 메모를 써 넣기 전 박연수 대위(천안함 작전관)로부터 천안함 사고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내용을 기록해 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군에서 주장해 온 “이용기 씨가 작전상황도를 빼앗아가서 ‘임의로’ 써 넣은 것이다”라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즉, 이용기 씨는 본인이 메모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은 천안함의 작전관인 박연수 대위로부터 설명을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지 자신이 임의로 혹은 추측으로 써 넣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초좌초’라는 문구와 ‘별표’마크가 표시된 위치는 천안함 작전관의 설명에 따라 기록된 내용인 것이 분명하게 밝혀진 셈입니다.

 

그리고 어제 공판에서 박형준 전 유가족 대표는 당시 브리핑에서 해군측으로부터 '최초좌초'에 대하여 분명히 들었다고 증언함으로써 추적60분에서 방영된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2. 뉴스 제목 -‘사고지역은 초계함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이 발언은 희생자 가족인 이용기 씨가 브리핑 과정에서 군에 대하여 한 발언입니다. 이용기 씨는 해군 조타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부사관 출신으로 사고 초기 2함대 사령부로 달려가 원인규명을 위해 해군측과 각을 세우며 따지고 들었던 인물입니다.

 

어제 박형준 전 유가족 대표의 증언에 의하며 희생자 가족들 중에 해군부사관 출신도 있고 경남지방에서 오신 분들 중에는 조선소 근무 경력이 있는 분들이 있어서 사고원인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좌초가 아니냐”고 군측에 따져 물었지만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박 전 대표는 “그(이용기 씨)가 천안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해군에서 근무할 당시 평상시 자주 나갔던 곳이고, 경도와 위도, 조류간만의 차까지 다 알고 있었다”며 “백령도에는 초계함 같은 배가 가지 않는데 왜 기동하게 됐느냐, 내가 근무할 당시엔 백령도에 근접하게 간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또한 뉴스 제목으로 뽑았던 이용기 씨의 발언 “사고지역은 초계함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에 대해서 저는 이용기 씨가 해군 조타사 출신이기 때문에 해도를 읽을 줄 알고 따라서 해도의 수심과 지형(모래톱)을 보니 ‘이런 저수심에 초계함은 항해가 불가하다’는 것을 근거로 한 발언으로 판단합니다.

 

9차 공판에서는 이용기 씨가 증인으로 나오게 되므로 그때 이러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할 것입니다만, 제3자의 증언을 통해 당시 어떤 상황이었으며 어떤 발언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기록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천안함 사건의 공판에서 많은 분들이 자신이 했던 발언 내용에 대해 부인하거나 달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빨간점과 숫자 그리고 주변의 함선들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표기된 빨간점에 대해 이원보 22전대장은‘함수로 추정되는 위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빨간점 주변의 숫자와 플러스, 마이너스 표기에 대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모른다’ 혹은 ‘자신이 답할 내용이 아니다’로 일관했습니다.

 

사실 2010년 3월 27일 아시아경제에서 작전상황도 포토기사를 내 보낸 후 제가 그 기사내용을 들여다 본 것이 4월 15일입니다. 작전상황도에 ‘최초좌초’라는 문구를 그때서야 처음 발견했던 것이지요. 천안함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은 어쩌면 그 작전상황도의 공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안함 함미가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좌초’의 정황만 있을 뿐 육안으로 확인될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함미가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선저하부에 나타나 있는 스크랫치가 ‘좌초’를 입증해 주었고 이어서 작전상황도에 ‘최초좌초’라는 문귀가 발견됨으로써 ‘좌초’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당시‘빨간점’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였었습니다. 막연하게는 구조 당시의 상황을 상황판에 그려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 주변의 함의 배치도 이해할 수 없고 특히 ‘38’이라는 숫자와 플러스, 마이너스 표기의 의미는 더더욱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함수가 16시간22분간이나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다는 사실이 첫 공판 때 유종일 해경 501부함장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으며, 또한 심승섭 해군작전처장의 증언을 통해 익일 오후 13:37까지 떠 있는 함수를 해군은 실시간 추적하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옴으로써 빨간점의 위치가 당시 함수의 위치가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히 밝혀진 것입니다.

 

더구나 천안함 함장은 함수에서 생존대원들과 함께 해경 501호에 구조될 당시 제일 마지막으로 천안함 함수를 떠나면서 “내가 마지막”이라며 “수색했으나 더 이상 생존 대원은 없다”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46명과 함께 가라앉은 함미에는 구조선이 없고 모두 구조가 끝난 함수에 집중적으로 구조선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 없는 이야기입니다.

 

빨간점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그날 해군, 해경, 관공선까지 동원되어 모든 함선들은 천안함 함수와 함미는 안중에도 없고, 그 빨간점을 구조하기 위해 집결해 있었는지 그리고 인원수로 추정되는 숫자 ‘38’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지 등은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꼽히게 될 것이며 재판 과정에서 하나씩 그 진실을 드러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서프라이즈 / 신상철 / 201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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