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내란 음모’ 유죄 되려면…‘추상적 합의’만으론 부족

호랑이277 2013. 8. 30. 19:18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의원회관 사무실로 가기 위해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김경호 기자

법원 “세부 실행계획까지 모의할 필요는 없어”
내란 위해 무기·자금 조달했다면 ‘음모 아닌 예비’
김대중 전 대통령·인혁당에 적용…재심서 무죄

형법 87조는 ‘내란’을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 참절’은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주권 행사를 배제하고 불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특정 지역을 불법 점거한 뒤 자치구라고 선언하면 ‘국토 참절’이 될 수 있다. ‘국헌문란’은 형법 91조에 규정돼 있는데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등이다. ‘폭동’은 여러 사람이 결합해 폭동·협박을 행하는 것으로 적어도 한 지방의 질서를 파괴할 정도의 규모여야 한다.

 

이런 요건을 충족할 정도의 행위를 모의하거나 준비한 경우 내란음모·예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어디까지를 예비·음모로 볼 것이냐는 구체적 사건마다 다르다.

 

판례를 종합해보면, 이석기(51)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받고 있는 ‘내란음모’ 혐의는 “내란죄의 실행 착수 전에 그 실행의 내용에 관해 2인 이상의 자가 통모·합의를 하는 것”이다. 판례는 “단순히 추상적, 일반적 합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실행 계획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의할 필요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란예비’는 조금 다르다. 판례는 “내란죄의 실행을 목적으로 하는 준비행위로서 실행의 착수 전 단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내란죄를 실행하기 위해 병기와 자금을 조달하고, 군중을 모으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비’의 예다. 통상 ‘예비’는 내란을 위해 총기 등 물품을 준비했을 경우이고, ‘음모’는 구체적 행동을 모의했을 경우로 보면 된다.

 

대표적인 ‘내란음모’ 사건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다. 1980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세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했고, 김 전 대통령 등을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겼다. 김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다시 징역 20년형으로 감형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만들어진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3년 10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04년 1월 무죄를 선고했다.

 

‘인혁당 사건’(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도 ‘내란음모’ 혐의가 적용된 사건이다. 1974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유신 반대투쟁을 했던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배후에 인혁당 재건위가 있다고 발표하고 23명을 내란예비·음모 등 혐의로 기소했다. 도예종씨 등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판결 확정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돼 ‘사법 살인’으로 불렸다. 2002년 9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고, 같은 해 12월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했다. 2007년 1월 사형당한 8명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가장 최근에 내란죄가 적용된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1995년 12월 5·18 특별법이 공표되면서 내란죄 혐의 등으로 기소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을 받았지만 1997년 12월 특별사면됐다.

 

김원철 기자

 

등록 : 2013.08.28 20:22 수정 : 2013.08.29 15:4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12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