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한성백제 南西방어선 찾았다

호랑이277 2011. 10. 7. 19:17

한성백제 南西방어선 찾았다

잃어버린 500년 왕국 한성백제(기원전18∼서기475년)와 관련돼 고고학계에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다. 지금까지 백제초기 수도 하남 위례성(한성)의 북쪽 침입로인 한강 방어선의 윤곽은 대체로 드러나고 있다. 한성백제 도성의 남서쪽 길목 수비성의 위치는 의문부호로 남아 있었다.

고고학계는 하남 위례성을 ‘경기도 하남시 고골일대’나 한강변 ‘풍납토성·몽촌토성’, 또는 이일대 전체를 아우르는 곳으로 추정해오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한성백제가 초기에 100년이상 신라와 전투했고, 근초고왕 이후 한성말기에는 신라 와 약 100년간 치열한 전투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한 성도읍지 추정지 서쪽으로는 관악산(629m)-우면산(293m)-구룡산( 283m)-대모산(293m)으로 이어지는 천혜의 지형이 있다.만약 이곳에 수비성이 없다면 그야말로 한성도읍지는 무방비로 노출되고 만다. 그동안 하남 위례성 남서쪽 방어라인에 성다운 성이 발견되지 않아 ‘하남 고골·풍납토성·몽촌토성’을 아우 르는 한성 도성의 위치설정에 일정한 한계를 노출해왔다.

그런데 이일대에 풍납토성 2배 규모의 거대한 산성을 포함해 4개의 토성 흔적이 서울 강남구, 서초구의 대모산-우면산으로 이어 지는 산악지형에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축성된 것으로 백제문화 연구회(회장 한종섭)에 의해 밝혀졌다.

◈풍납토성 2배 규모의 대모산토성〓한회장은 3일 “이일대를 회 원들과 수차례 답사한 결과 풍납토성(약26만㎡)의 2배 크기의 토 성인 대모산토성(약 50만㎡)을 비롯, 풍납토성과 비슷한 규모의 우면산성과 옥녀봉토성, 구룡산성등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 다. 한회장과 오순제(한성디지털대) 교수는 조만간 이같은 내용 을 논문등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한회장은 “그동안 대모산 정상에 농성을 할 목적의 소규모 석성 (石城)만 발굴됐을 뿐, 이 석성과 연계돼 산 전체를 에워싼 거대 한 토성 흔적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대모산토성은 양재천과 탄천이 어우러지는 합수(合水) 지형에 위치하며, 주변에 풍납토성에 버금가는 2~3개의 성을 거느린 모성(母城)으로 ? 償ㅅ홱? 대모산토성은 북쪽 강남구 일원동과 자곡동 쟁골등지로 연결되며, 길 맞은편에는 백제시대 막새기와등이 출토된 한강변 삼성토성 흔적이 남아있다.

한회장은 “우면산 동쪽 성촌 잿골과 길 건너편에 마주보이는 경 기도 과천의 주암1동에서도 산성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주암1동 옥녀봉으로 연결된 곳에는 토석(土石) 혼축으로 쌓은 성벽이 일 부 남아있다”고 밝혔다. 구룡산에도 성터의 흔적이 곳곳에 있고 , 이러한 산들에서는 삼국시대 유물 파편이 단편적으로 발견된? 募?것이다.

◈한성백제 서남쪽 수비성〓앞으로 유적 추가발굴이 필요하겠지만, 백제문화연구회가 이들 4개 산성을 한성도성 남서쪽 수비성 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적군이 관악산에서 대모산을 지나 탄천을 지나자마자 백제고분군이 있는 석촌동과 방이동 평야지대가 나타나고 곧바로 한강변의 몽촌토성 풍납토성이 포위 된다. 이곳을 스쳐지나면 하남 고골 일대까지는 일사천리로 뚫릴 수 있다.

한회장은 “대모산토성은 한성도성 남쪽과 서쪽의 길목을 동시에 장악할 수 있고 왕도와 마주보면서 협력할 수 있는 중요한 길목 ”이라며 “한성도성 서남쪽 수비성 규모를 알게됨으로써 한성백 제 시대 도성체계와 규모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길이 열리게 됐 다”고 밝혔다.

◈신라·고구려와의 100년 전쟁〓대모산토성 진입로는 남쪽의 신라세력과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고구려·신라 세력의 침입을 저지 할 수도권 방어라인으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는 백제(당시 마한맹주국) 다루왕 37년(서기64년)에 신라 탈해이사금과 지금의 충북 보은(와산성)·옥천(구양성)에서 첫 전투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다루왕 49년(서기76년)까지 12년간 무려 6회나 전투를 했다.

개루왕 38년(165년)까지 약 90년간 소강상태를 보이다 서기204년 까지 신라(진한맹주국인 사로국)와 소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전투 를 벌인 것으로 기록돼있다. 고구려와는 근초고왕때부터 약 100 년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서기396년(영락6년)에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군은 백제와 싸워 한성백제 도성의 코앞인 인천·강화 일부 지역과 임진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kr

 

문화일보 기사입력 2003-06-03 10:51 | 최종수정 2003-06-0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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