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만·김진호 항해사 구조현장 목격담
2010년 03월 29일 (월)
인천일보는 지난 27일 오후 8시쯤 옹진군청 어업지도선 박성만(38) 항해사와 인천-백령간 A고속훼리 김진호(50) 항해사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침몰중인 천안함 갑판 위에서 해군 장병들을 구조한 긴박한 순간을 전해 들었다.
다음은 박성만, 김진호 항해사와의 일문일답.
-언제 해양경찰에서 구조요청을 받았나.
▲ 인천 백령도 앞바다에서 해군 초계함에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지난 26일 밤 9시30분 쯤 으로 알고 있다. 사고 후 20여분이 지난 9시 50분쯤 해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사고현장에 도착한 것은 구조요청을 받은 지 10여분이 지난 10시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군 PK함, 옹진군 어업지도선 3척과 옹진군행정선 1척 등이 현장에 동시에 도착했다.
-어업지도선이 도착할 당시 현장 상황은.
▲도착한 해상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해군장병 수 십 명이 기울어져 있는 배 선두의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함정은 점점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어 매우 급박하게 움직였다. 서둘러 눈에 보이는 모든 장병들을 구조해 냈다. 이미 배 뒤쪽은 상당 부분 가라앉은 상태였다. 물 속에 잠긴 함정 뒷쪽은 어떻게 손 쓸 수 없어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구조된 장병들의 모습은.
▲어업지도선 동료들과 함께 정신없이 부상자들을 배 위로 옮겼다. 구조돼 배에 올라탄 이들 중 일부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고 피를 흘리는 군인들도 여럿이었다.
-구조작업은 얼마나 벌였나.
▲천안함에 도착한 후 정신없이 구조작업을 벌이다 보니 1시간여가 흘렀다. 갑판에 매달려 구조를 요청하는 장병들은 침몰 후 1시간이 넘은 밤 11시 부터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함정 뒷부분 천안함 내부에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됐으나, 후미가 바다 속에 이미 가라앉았기 때문에 선실 내부의 장병들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한 사고해역은 바닷물이 차고 파도는 높게 일었다. 27일 오전 2시30분이 넘어서야 구조 작업을 끝냈다.
/소유리 기자·박진영·유예은 인턴기자 (블로그)rain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