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 삭제 지시 종착역, 업무혁신실? 기록관리실?
조명균이 전달했다는 실무진 누구
이지원 개발 민기영 “삭제 못한다”
김정호 “종이기록 삭제 오해한 듯”
검찰, 이지원 구축한 전문가 조사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지원(e知圓) 시스템의 대통령 보고 목록에서 대화록을 삭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는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조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를 청와대 ‘담당 실무진’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7월 30일자 1면 >
그가 노 전 대통령의 대화록 삭제 명령을 전달한 실무진이 이번 사초(史草) 실종 논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30일 조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의 ‘이지원 보고 목록에서의 대화록 삭제’ 지시를 직접 실행하지 않고 ‘담당 실무진’에게 전달한 것은 “조 전 비서관이 이지원에 접근해 수정하거나 삭제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전 비서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그는 대통령기록물과 직접 업무상 관련이 있는 ‘업무혁신비서관실’이나 ‘기록관리비서관실’의 실무진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찰과 정치권 주변의 분석이다.
◆청와대 내 IT전문가 통했나=업무혁신비서관실은 비서실장(당시 문재인) 산하 총무팀에 소속된 일종의 업무지원 부서다. IT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었던 이 부서는 청와대 전산화 과정을 주도했다. 청와대는 이지원 시스템을 도입하며 모든 문건을 전산화 문서로 일원화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이지원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적도 있다. 본인뿐 아니라 이 비서관실 직원 4명의 이름을 함께 올려 화제가 됐었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이지원 발명자’로 등록돼 있는 민기영 전 업무혁신비서관(현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원)은 2007년 10월 19일부터 비서관을 맡았다. 전임 김충환 비서관이 사의를 표하면서 행정관으로 일하다 승진했다.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기록관리비서관실 등을 거치지 않고 대화록을 삭제하려고 했을 경우 IT 기술자에게 명령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 전 비서관은 기자와 통화에서 “(검찰에서) 조 전 비서관이 뭐라고 말했는지 전혀 모르고, 그와 관련된 답변을 하기 곤란하다”며 “이지원엔 (내용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한번 등록한 다음엔 삭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록물 접근 가능한 관리실 통했나=또 다른 경우의 수는 조 전 비서관이 기록물에 접근이 가능한 기록관리비서관을 통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역시 당시 업무라인에 있던 인사들은 조 전 비서관에게 그런 지시를 전달받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호 전 기록관리비서관은 ‘오해에 의한 삭제 진술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 전 비서관은 “이지원 시스템으로 전산화된 대화록이 아니라 컴퓨터에서 출력한 종이 기록물을 노 전 대통령이 없애라고 지시했을 순 있는데, 이를 조 전 비서관이 대화록 삭제 지시로 오해했을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제1부속실에서 기록물 업무를 담당했던 이창우 전 수석행정관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직접 지정기록물로 대화록을 처리해 기록관리비서관실로 넘겼다고 밝혔다. 이 과정을 거치면 누구도 삭제할 수 없고, 대통령기록관으로 자동 이전된다는 것이 이 전 행정관의 설명이다.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봉하마을에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한 이지원 사본의 봉인이 훼손된 점, 일부 데이터가 유실된 점 등이 이번 국회 열람활동 중 드러났다”면서 여전히 이명박정부가 훼손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2007년 12월까지 기록관리비서관으로 일하며 기록물 이관 준비 작업을 주도했고, 이후 초대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취임하는 등 이관의 전 과정에 관여했다.
◆이지원 복원이 열쇠=박진우 전 대통령기록관 과장도 당시 주요 실무진 중 하나다. 임 전 비서관이 대통령기록관장으로 가면서 그는 지정기록물 담당 과장을 맡았다.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후 임 전 관장과 함께 대통령기록관 과장 직책에서 면직됐다. 그는 통화에서 “검찰이 조 전 비서관을 조사한 기록을 확인하지 않는 한 믿기 힘들다”며 “이지원을 만들 때 참여한 삼성SDS가 협조한다면 이틀이면 국가기록원 자료를 복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지원을 복원하면 여전히 대화록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시 청와대는 시스템 오류를 우려해 이지원(시스템)과 더불어 모든 데이터를 함께 넣은 별도의 스토리지(저장 장치)를 대통령기록관에 이중으로 이관했다. 박 전 과장이 말한 자료 복원은 스토리지 복원을 의미한다. 문재인 의원 측도 이중으로 이관한 기록물을 복원하면 정상회담록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봉하마을사업본부장은 “새누리당이 반대해 진행되지 않았던 대통령기록관의 이지원(업무 시스템) 원본을 열어보는 일을 선행해야 기록물이 정말 사라졌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찰 수사도 이지원 시스템으로 향하고 있다. 검찰은 전날에 이어 30일에도 이지원 시스템 구축과 관리에 관여한 민간 전문가들을 불러 시스템 구동 원리 등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지원과 대통령기록물 관리시스템인 팜스(PAMS) 시스템을 파악한 뒤 본격적으로 노무현정부 출신 인사들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강인식·이가영·이윤석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13.07.31 03:00 / 수정 2013.07.3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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